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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진짜 복음을 구별하는 잣대 기준 과연 나는?

by White James 2024.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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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면서 과연 나는 "십자가"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생각나는 것이 무엇인가? 십자가는 복음이며 복음은 바로 믿음이며 나의 신앙이고 본질인데 과연 나는 십자가 복음에 대한 정확한 잣대를 가지고 있을까?

노희송 목사님의 "빈배"의 내용에서 찾아본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의 기적, 치유, 가르침에 매료되어 몰려왔습니다. 문제는 그를 어떤 분으로 알고 있는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무리가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그리고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막 8:28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기적을 베푸는 것 이상은 별관심이 없었을 것입니다. 고(故)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의 <제자입니까?>라는 책에 따르면 무리는 기적에만 관심이 있었지, 예수님이 정확히 어떠한 분이신지는 몰랐습니다. 그들은 볼거리에만 관심을 가졌던 까닭에 볼거리가 떨어지면 흩어졌습니다. 복음보다 복음이 주는 보너스에 더 관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대학 1학년 때 지금 제 아내와 교제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저희 집은 토론토 제일 동쪽에 있었고, 제 아내의 집은 서쪽 끝에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학교는 북쪽 끝에 있었고, 아내의 학교는 남쪽 끝에 있었습니다. 종일 가게 일을 하셔야 했던 부모님은 저에게 차를 장기로 빌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는데, 저는 그 차로 동쪽에서 북쪽에 있는 학교에 갔다가 남쪽으로 내려가 여자친구를 만나 후 서쪽 끝에 있는 그녀의 집에 데려다주고 저의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이렇게 거의 4년을 연애하다 보니 리스했던 자동차의 마일리지가 엄청나게 쌓여 아버지는 엄청난 벌금을 지불하셔야 했습니다. 당시 연료비와 보험료도 많이 냈던 기억이 납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양가로부터 결혼 허락을 받았습니다. 당시 저와 아내는 스물다섯, 스물셋으로 친구들이 가운데 가장 먼저 결혼한 커플이었습니다. 당연히 자동차 유지비가 절약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일리지나 유지비를 절약하기 위해 결혼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보너스일 뿐입니다. 서로 사랑했고 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대로 훈련받기 위해 함께 미국으로 유학 가기로 결심하고 결혼했던 것입니다.

 

본질을 추구하노라면 때로는 그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또 때에 따라서는 보너스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대가나 보너스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복음보다 대가에 집중하다 보면 윤리와 율법을 앞세우게 됩니다. 보너스에 집중하면 기복 신앙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떠한 분입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막 8:29)라는 베드로의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런 베드로조차 예수님께서 죽음과 고난, 십자가를 말씀하실 때 항변했습니다. 

 

드러내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막 8:32

 

베드로는 예수님께 권리 주장을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언가를 해 드린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주 그분께 우리가 뭔가를 해드리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셨지, 빌면서 구걸하지 않으셨습니다. 믿으라고 명령하셨지, 제발 믿어 달라고 애걸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다면 십자가를 언급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픽사베이

 

카일 아이들먼은 <Not a fan - 팬인가, 제자인가> 라는 책에서 이러한 예를 듭니다. 결혼할 나이가 된 첫째 딸을 위해 신랑감을 찾겠다면서 대문짝만 한 광고를 내고 값비싼 경품을 내걸고 제발 우리 딸과 결혼해 달라고 한다면 과연 딸의 가치가 올라갈까, 아니면 내려갈까 하는 질문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도 성도들에게 이러한 자세로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끄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준다는 느낌을 갖도록 만드는 것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베드로처럼 권리 주장까지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막 8:33

 

성령님의 이끄심에 따라 고백했던 베드로가 순식간에 사탄의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악한 영들도 예수님이 누구신지 베드로보다 더 먼저 알았습니다. 결국 차이점은 십자가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를 속이려 합니다.

 

"다른 것 다 이야기해도 좋다, 십자가만 빼고!"

 

리더십, 기도 응답, 축복, 자녀 양육, 상당, 치유, 비전, 많은 기적.... 이것들은 복음의 본질이 아닙니다. 덤으로 주시는 보너스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정작 본질인 십자가는 거북하게 여기도록 만듭니다. 십자가 없이는 진정한 구원과 생명이 없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짜 복으로 돌아가는 길은 십자가의 도(道)밖에는 없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정답은 잘고 있습니다. 오늘날 최고의 설교를 골라서 듣는 성도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안다고 신앙 고백은 하지만, 십자가의 능력 없이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는 한 가지를 붙잡기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치 부부가 결혼할 때 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혼 서약을 한다는 것은 서로 상대방을 평생의 동반자로 정하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정하는 것입니다. 결혼식에서 제 아내에게 'Yes'라고 대답한 순간 저는 다른 여성들에게 'No'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 아내만 바라보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우리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Yes'를 고백한 순간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섬겼던 모든 우상에게 'No'를 해야 합니다.

 

데이비드 왓슨이 쓴 <제자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청년이 나이 든 그리스도인에게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 노인은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뒤돌아볼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쉽게 갈 수 있는 선택과 유혹들이 많았지만, 주님은 일찌감치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마음을 정하고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복음에 추가되거나 덤으로 주어지는 보너스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는 것을 뜻합니다. 복음으로 인한 사명 하나만을 붙잡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복음의 본질을 붙잡고 있는지 보너스를 붙잡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

 

 데이비스 왓슨의 책에서 한 언급이 매우 공감이 되고 마음 깊이 느껴집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오직 한 방향만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겉절이가 아닌 메인 디쉬를 먹고 그에 맞는 생활을 하는 내가 되어야겠습니다. 아무리 사이드 메뉴가 맛있어 보여도 메인 디쉬를 이길수는 없겠지요?

 

오늘 하루도 본질을 바라보고 추구하는 삶을 살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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